문득 미래의 뇌 과학은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컴퓨터의 OS와 인간의 뇌는 닮은 구석이 많다고 들었는데, 만약 미래에 뇌로 가공되지 않은 원본 데이터가 직접 쏟아진다면 인간은 정상적인 ‘선택적 데이터 집중’을 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시각 정보만 해도 실제로 망막부터 뇌까지 여러 겹의 물리적 필터가 적용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세상을 볼 때 시야 전체를 선명하게 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중심부 시야만 높은 해상도로 인식하고, 주변 시야는 상대적으로 적은 정보만 처리한다고 한다. 그런데 미래에 기술을 통해 뇌에 정보를 직접 입력한다면 이 정교한 필터 기능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까 라는 의문이 든다. 시야 전체가 극도로 선명한 정보로 가득 차거나 온갖 텍스트와 알림이 뇌 속에서 번쩍인다면, 뇌는 무엇이 ‘내가 집중해야 할 타깃’이고 무엇이 ‘스쳐 지나가야 할 배경’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인지적 대혼란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이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다. 나머지 불필요한 정보들을 뇌가 엄청난 에너지를 써서 ‘억제(Inhibition)’하는 과정에 가깝다고 한다. 만약 뇌 속으로 다이내믹한 데이터가 쉴 새 없이 직접 주입된다면, 뇌는 쏟아지는 데이터들을 처리하고 억제하느라 금방 과부하가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미래의 기술은 기계가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이 의식적으로 ‘저 정보를 확인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에만 데이터가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들어오게 만드는 철저한 ‘요청 기반(On-Demand)’ 시스템이어야 하지 않을까? 주도권은 항상 기계가 아닌 뇌가 쥐어야 할 것 같다.
문득 생각해 보면 인간의 뇌는 데이터를 많이 처리하는 기계라기보다, 데이터를 버리는 데 특화된 시스템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뇌에 직접 물리적인 장치를 꽂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위험해 보인다. 그렇다면 귀의 청신경을 이용한 ‘골전도’처럼, 우리 몸의 다른 신경 회로를 통해 신호를 우회해서 쏴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득 청각 장애인을 위해 소리 데이터를 진동 패턴으로 바꾸어 주는 ‘VIBES’라는 특수 조끼가 떠올랐다. 피부 신경으로 들어오는 진동 패턴을 뇌가 스스로 학습해 ‘소리’나 ‘언어’로 인지해 내는 기술이다. 이렇게 간접적인 신경 경로를 거치면 뇌가 스스로 필터링할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서 또 궁금증이 생겼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의 지식을 머릿속에 직접 주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단순히 청각이나 시각 데이터로 변환해 쏜다고 해서 암기가 되는 영역은 아닐 것 같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는 ‘글자 인지(시각) ➔ 단어 뜻 분석(언어 영역) ➔ 기존 지식과 연결(연합 영역) ➔ 장기 기억으로 저장(해마)’이라는 극도로 복잡한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단순히 데이터를 쏜다고 이게 뇌에 슥 입력될 리가 없지 않은가?
흥미가 생겨 진짜 과학계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가볍게 찾아보았다. 물론 영화처럼 지식을 통째로 복사하는 건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실마리가 될 만한 흥미로운 기초 연구들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기억이 형성될 때 일어나는 뇌의 전기 신호 패턴을 분석해 학습 능력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려는 ‘신경 발화 패턴 연구’, 뇌의 해마 역할을 보조하는 신경 칩을 이식해 손상된 기억 능력을 회복시키거나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돕는 ‘인공 기억 칩(해마 보조 장치)’, 그리고 미세 전류 자극을 통해 뇌 세포들의 연결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지식을 더 빠르게 흡수할 수 있도록 돕는 ‘AI 유도성 신경 가소성 촉진’ 같은 기술들이 세포나 동물 실험 단계를 거치며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최근에는 뇌파의 미세한 패턴을 AI로 해독하여 특정 감정이나 시각 훈련을 유도하는 ‘DecNef(디코딩 신경피드백)’라는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뇌의 신호를 단순한 덩어리로만 보았다면, 이제는 AI를 이용해 특정 시각 정보나 감정 상태와 관련된 뇌 활동 패턴을 조금씩 해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기술이 극도로 발전한다면, 아주 먼 미래에는 뇌의 규칙에 맞게 정보를 ‘재해석’해서 뇌가 가장 편안하게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데이터를 전달하는 세상이 어쩌면 정말 올지도 모르겠다.
이는 내가 평소 하던 생각에 뇌와 컴퓨터를 비유해본 것일 뿐이며, 실제 뇌의 작동 원리는 훨씬 복잡할 것이다. 나는 실제로 전문적인 뇌과학 지식은 없지만, 이런 단편적인 기술들만 알아보아도 뇌과학의 세계는 참 흥미로운 분야 같다. 과연 10년, 20년 후에는 어느 정도로 기술이 발전해 있을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이 글을 쓰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뉴럴링크(Neuralink)의 블라인드사이트(Blindsight) 소개 영상도 보게 되었다. 시각 정보를 뇌로 직접 전달하는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이라 참고용으로 링크를 남겨둔다.